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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일단 모아두었어

시의 쓸모를 찾아서 - 시에 관한 소설 같은 “참으로 쓸모 있는 인간의 놀이”: 문보영 시집 「책기둥」의 지말, 앙뚜안, 스트라인스 연작시 산책하기

시의 쓸모를 찾아서

칠레 소설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2부는 두 명의 시인(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이 그들의 우상인 세사레아 타나헤로라는 시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지난한 여정을 거쳐 두 시인은 소문만 무성하던 타나헤로의 시를 볼 수 있게 되는 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이 당혹스러운 시를 가지고 있던 작가 아마데오 실바티에로는 두 시인에게 묻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시를 마주할 때 우리는 자주 세사레아의 시를 마주한 아마데오의 심정이 되곤 한다. 모든 것은 그저 기호의 놀이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과연 이 텍스트 이면에 내가 얻어갈 무엇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도대체 이 모든 게 다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은 실로 제기되어 마땅한 의문이다. 시는 물질에 의존한 우리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지도, 사회를 적극적으로 바꾸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시가 쓸모없다고 말한다. 시는 그저 구불거리는 선의 모습으로 거기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문보영이 있다. 시집 「책기둥」으로 2017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시집을 펴낸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시가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 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내가 아무리 쓸데없어 봤자 시만큼 쓸모없겠냐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수업 조교를 할 때였습니다. 학생들에게서 문자가 오곤 했습니다. 3회 이상 결석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과제를 늦게 냈는데 불이익이 있습니까. 저는 전체 문자를 날립니다. 우리가 태어난 거 자체가 불이익입니다. 공지사항에 다 나와 있습니다, 라고요. 그럼 어떻게 살지요? 본전만 뽑자, 이것이 제 좌우명입니다. ()

어느 순간부터인가 생선 뼈 바르듯이 시를 읽습니다. 제 시가 읽힐 때도 생선 뼈 발리는 기분입니다. (…) 시간이라는 놈은 늘 누워 있는데 배가 고파서 조금 화나 있습니다. 놈은 뭔가 잘못 먹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놈이 별 뜻 없이 이를 악, 물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난데없이 가슴이 찢어질 리 없습니다. 별 이유 없이 시를 씁니다. 시를 쓰는 순간만 아프지 않고, 시를 쓰지 않는 나머지 시간이 너무 지루합니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를 쓰는 시인은 시의 쓸모 없음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은 별 이유 없이 시를 쓴다고, 그저 시간이라는 놈의 폭력을 피해 허벅지에 난 점에 달린 손잡이를 당겨 볼 뿐이라고 명랑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말은 시만큼이나 모호해서, 시의 쓸모라는 질문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인 문보영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쉽사리 알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사람들을 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열고 싶다는 느낌이 무얼 의미하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너무 조급하지 말자. 다행하게도 우리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두 시인처럼, 문보영의 시를 찾아 드넓은 멕시코 평원으로의 모험을 떠날 필요는 없다. 그녀의 시는 여기 점멸하는 우리의 스크린 위에, 도서관의 책장과 파주의 창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시를 읽고 텍스트 안을 가볍게 산책하면 된다. 문보영이 제시하는 시의 쓸모를 찾아 나서기 위해 「책기둥」에 실린 시에 관한 시(메타시) 5편을 소개한다. 젊은 여성 시인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의 시작(詩作) 생활을 담은 하나의 소설이자 농담인 다섯 편의 연작시는 시의 쓸모를 향한 여정의 초입에서 우리를 마주하는 명랑한 징검다리가 되어 주리라 생각한다.

 

우선 <파리의 가능한 여름>을 읽어보며 시의 쓸모로 돌아와 보도록 하자.


파리의 가능한 여름

 

영화 「부정확한 뱀」은 뱀이 튀어나올 때마다 팔짝팔짝
뛰어 대는 세 인물에 관한 영화다
한 명이 뛰면 어둠 속에서 한 명이 뛰어나와
뛰고 다른 어둠에서 또 하나가 뛰어나와
굽혔던 무릎을 피며 뛰는
뛰고 뛰고 뛰는
뱀 때문에 깜짝
깜짝 놀라는 세 명의 이야기

 

어린 시인 앙뚜안, 지말 그리고 스트라인스는 「부정확한 뱀」을 본 후 집으로 향한다
대낮의 여름
바닥에 한 번 들러붙은 껌 딱지가 한결같이 붙어 있는

 

앙뚜안: 집에 가서 뭐 할 거야?
지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시작 노트를 좀 끄적여볼까 해
스트라인스: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도 시작 노트 있는데! 쓸데없는 걸 쓰는

 

한 마리의 파리는,
앵무 깃이 단순 솔직하게 꽂혀 있는
앙뚜안의 챙 넓은 모자 위에 앉았다 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참게 되는

 

정적이 흐른다 셋은 각자의 시작 노트를 떠올리고는, 정말 쓸데없어서 입을 다문다 도로엔 더러운 비둘기들이 걸어 다니고 있다 목에 헤드셋을 걸친 키 작은 남자는 자신이
비둘기의 눈에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둘기를 향해 돌진했고

 

비둘기는 놀란 척하며 옆으로 피한다 여름
이었다
다른 맥락에 놓인 파리가 여전히 가만히 있는

 

스트라인스: (허리에 찬 주머니를 흔들며) 아이스크림 먹을까?

 

순진한 이빨을 드러내 웃는 스트라인스 파리가
챙에서 얇은
발을 떼 천천히 세 시인의 주위를 난다
파리의 미덕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
이라는 문장이 누군가의 시작 노트에 적혀 있을 법한 여름이었고

 

앙뚜안: 보여줄까, 내 시작 노트?
지말과 스트라인스: (거의 동시에 대답한다) 아니!
지말: 내 거 보여줄까?
앙뚜안과 스트라인스: (얼른 귀를 틀어막으며) 아니!
스트라인스: 보여 줘?
앙뚜안과 지말: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그러지 마!

 

파리가 위이잉 날았다 파리란… 셋은 동시에 생각한다 그러나 그중 파리란… 하고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은 스트라인스이므로, 귀를 막느라 땅에 떨어뜨린 지팡이를 주워 파리를 향해 휘두른다 파리는 더위 때문에 천천히 날고 있었다 지팡이를 휘두른 속도가 파리가 나는 속도를 앞질렀으므로 파리가 저쪽으로 밀려났고 밀려났을 뿐 죽은 건 아니었다 여름이었다

 

파리를 구태여 때리는 계절 누군가
머릿속으로 자신의 시작 노트를 떠올렸었다 사실

 

영화「부정확한 뱀」에는 진짜 주인공이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뱀이 나타나기 전에 죽어 버렸다
주인공이 너무 빨리 죽어서 아무도 그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무지 슬픈 영화였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여름이었다
슬퍼하지 않은 것도 슬퍼한 것의 일부가 되는 계절이었으므로

 

파리가 다시 세 시인의 주변을 알짱거린다 늘
그런 식이었다 파리는
잘하건 못하건, 누군가의 주위를 서성였다
서성이다 한 대 맞았지만 죽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한 마리의 파리가 등장하는
어떤 시에 관한 시작 노트를 끄적이던 시인은
노트 모퉁이에
파리가 살 만한 인간적인 삶의 조건,
이라는 구절을 휘갈긴 뒤 노트를 덮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시 쓰기는 참으로 쓸모 있는 인간의 놀이다
여름이었으므로 그런 생각이 가능했다


여름이었다. 세 시인은 「부정확한 뱀」이라는 터무니없는 영화를 보고 나왔고, 앙뚜안의 모자에는 파리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헤드폰을 낀 남자와 그를 위해 놀란 척을 해주는 비둘기 따위가 보이는 여름이었다. 파리에게 지팡이를 휘둘러도 파리가 죽지는 않고 밀려날 뿐인 그런 계절이었다. 시작 노트를 보여줄지 묻고 서로를 펄쩍펄쩍 뛰게 만드는.「부정확한 뱀」이라는 영화도, 그 영화의 슬픔도, 그 영화의 주인공도, 헤드폰을 낀 남자도, 비둘기도, 날아다니는 파리도, 지팡이로 연장되어 파리를 때리는 스트라인스의 몸짓도, 스트라인스 자신도 (지말과 앙뚜안 또한 마찬가지로) 다 부질없는 수사에 불과한 여름이었다.

 

그런데 미지막에 등장하는 이 무명의 시인은 달리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 쓰기는 참으로 쓸모 있는 인간의 놀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무명의 시인은 시 쓰기가 참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가능한 이유는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부질없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부질없는 계절 속이기에 그런 생각이 가능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사람들이 시가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기분 좋은 말이라는 문보영의 말을 떠올려보자. 쓸모를 떠나서 태어난 거 자체가 불이익인 이 세상에서 재미 있다면 어느 정도 본전을 뽑은 것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시는 자신의 부질없는 재미로 하여금 쓸모를 갖는다.
그런데, 시 쓰기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라면, 독자인 우리에게 그건 무슨 의미인 것인가?

독자가 등장하는 <공동창작의 시>를 살펴보도록 하자.


공동창작의 시

 

젊은 시인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는 시 강연에 참석한다 빨래줄에 걸려 펄럭이는 티셔츠처럼
해가 하얗게 펄럭이고 있다

 

연단의 시인은 바닥에 크기가 제각각인 바나나를 늘어 놓는다 독자들은 바나나를 하나씩 가져간다
바나나 사이에 있던 바나나가
사라지고 또 다른 바나나가
움직이고 그러자 또 다른 바나나가
종적을 감추면서
작품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고 연단의 시인이 주장한다
바나나만큼 참여해서 바나나만큼 풍족해진 독자와 시인이

 

지말, 앙뚜안, 스트라인스는 부러웠다

 

나도 저거 하고 싶다!

 

속으로 외친 후 그녀들은 공동창작을 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

 

지말은 방에 틀어박혀 독자와 게에 관한 시를 썼다

 

목이 긴 독자가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게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이 길로 가면
게걸음을 쳐 이 길을 막고 저 길로
가면 게걸음을 쳐 저 길을 막았다
게걸음을 쳐 막는 식으로만 시인은 독자를 방해했다

 

*

 

앙뚜안은
시 쓰는 전갈에 관해 썼다
전갈은 뭉툭하고 딱딱한 손으로 잘
잡히지 않는 연필을 쥐고 시를 쓰고 있다

 

꿈 안에는 늘
꿈 밖으로
유출
되고 싶은 내가 있네

 

독자가 나타나서 힐끔거렸다가 전갈은
쥐고 있던 연필로 독자의 눈알을 찔렀다

 

꿈속의 나와 꿈 밖의 나는
컴퍼스로 그린 완벽한 두 개의
원처럼 적대적이네
뒤척이는 것은…

 

전갈은 목덜미가 서늘했다

 

독자가 새로운 눈알을 달고 와서는 그의 시를 훔쳐봤다

 

보지마!
보지 말란 말이야! 독자의
눈알을 찌르고
바닥에 떨어진 몽당연필을 주워 들었다

 

내가 꿈에서 깨는 걸 아무도 말리지 않네…

 

다시 독자가 찾아왔을 때 전갈은
!
눈알을 찔렀다
물고기의 부레를 찌르듯 작은 숨이
터져 나왔다 찌르고
쓰고 찌르고 쓰고 찌르고
썼다
수정구에서 흘러나온 액체로 인해
문체가 축축해졌다

 

*

 

스트라인스는 지팡이를 이용해 시를 썼다 지팡이를 휙휙 휘두르며 아무 생각을 안 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에스컬레이터다
아주 긴 에스컬레이터에 탄 시인은
놀란다 그 앞에 독자가 서 있다
여기도 독자가 있다니! 지팡이가
질겁한다

 

누군가 그의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뒤에 서 있는 독자가 숱이 빈 부분을 다른 머리칼로 덮어 주고 있다 시인의 팔은 의지와 무관하게 앞사람의 빈 부분을 덮어 주고 있다 에스컬레이터에 탄 사람들은 모두 탈모를 겪고 있으며 앞 사람은 그 앞사람의 허전한 부위를 머리카락으로 덮어 주고 그 앞사람은 그 앞사람의, 그 앞사람은 앞사람의 빈곤한 부분을 얼마 없는 머리칼로 덮어 주고 있다 거의 없는 것을 거의 없는 것으로 덮는 힘으로 에스컬레이터는 작동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시 속에서도 시인은 지팡이를 떨어뜨릴 수 있었다

 

*

 

젊은 시인 지말, 앙뚜안, 스트라인스는 각자의 집에서 독자와 재밌게 놀았다 동네의 어느 골목에는 시체가 한 구 누워 있었고 날파리가 잔뜩 꼬인 시체는 죽음을 성가셔하고 있다
해는 밝았다
시체는 심장이 썩은 지 오래지만 감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단의 시인은 우리 독자들로 하여금 시의 형태가 바뀐다고 이야기한다. 바나나를 잡고 돌아다니는 방식으로 우리는 시를 부여잡고 돌아다닌다. 시의 형태는 움직인다.
지말의 독자는 우리처럼 시 속을 걸어 다닌다. 그녀는 게를 통해 독자의 앞길 이쪽저쪽을 막는다. 독자는 시인에게 가로막힌다. 앙뚜안의 시에서는 반대로 독자가 시를 쓰는 전갈을 방해한다. 전갈은 어떻게 해서라도 독자가 보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찌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액체가 되어 시를 적신다. 독자는 시에 묻어 있다. 스트라인스의 시에서는 어떤가? 독자와 시인은 에스컬레이터에 모여 서로의 빈 부분을 덮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시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세 시인은 독자와 재미있게 놀았다.’

 

<공동 창작의 시>에 의하면 시인의 재미는 우리와 함께한다. 시인은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도 시인을 방해하며, 그러다가 서로의 빈 부분을 덮어준다. 그리하여 재미있게 논다.
독자인 우리는 언제나 시인과 함께 시 안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연에
여름이었다를 마음대로 덧붙여서 시인을 방해한다는 상상을 해보자.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시인에 의해 제약된다. 시인의 텍스트는 주어진다. 우리가 마주한 이것은 백지가 아니다. 시인의 언어에 기대어 우리의 덧붙임은 의미를 갖는다. ‘여름이었다를 덧붙인 다음에 시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어쩌면 시인의 손길과 우리의 손길이 만나 빈 곳을 채워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여름이었다를 덧붙이는 것처럼 적극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우리가 읽고 느끼는 시가 바로 그 시다. 우리 독자는 시의 부분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방식으로, “생선 뼈 바르듯이시의 형태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공동창작자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말한다. “제 시가 읽힐 때도 생선 뼈 발리는 기분이라고.

이것을 염두에 두고 다음 세 편의 시를 읽어 보기를 바란다.


모기와 함께 쓰는 시

 

젊은 시인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는 시인의 강연에 갔다
이쪽저쪽 깨기가 강연의 주제였다

 

연단 위의 시인은 이쪽저쪽을 깨고 있었다

 

모기가 그들을 찾아왔다 여름이었다 다림질된 적 없는 구름이 흐르는

 

맨 뒷자석에 앉은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는 강연자를 따라 가방에서, 이쪽과 저쪽을 깰 만한 것을 꺼냈다

 

앙뚜안은 가방에서 어제 만난 여자를 꺼냈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배를 피워 댔다 일관성 있고 꾸준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바에서 나온 그들은 빗속에서 헤어졌다
안녕
잘 가
더 잘 가

 

스트라인스는 가방을 열었다 엄마가 나오려 하길래 도로 집어넣었다
어저께는 사랑한다 했는데 그저께는 그런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지말은 가방을 풀지 못했다 매듭이 너무 복잡했다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강연자는 새끼 거북 사진을 내보였다 해변의
새끼 거북들이 함부로 태어나고 있었다
모기가
앙뚜안의 왼쪽 정강이에 달라붙었다
찌르고 빠는 주둥이의 불쌍함

 

모기다!

 

스트라인스가 지팡이로 앙뚜안의
왼쪽 정강이를 후려쳤다 모기가
은근슬쩍 슬퍼하며 자리를 옮기고

 

연단의 시인은 부단히 이쪽과 저쪽을 깨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 거북들은 늙어 보였다
그만 살아도 될 것 같다,
고 모기는 아닌 누군가 생각했다

 

모기는 할 일이 없었다 그도 누군가의 슬픔에 참견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계획대로

 

지말의 팔뚝에 앉은 모기는 주둥이를 꽂았다 피가 빨려서 가방의 매듭이 저절로 풀렸다 지말의 가방에서
미니 시인 스트라인스, 지말, 앙뚜안이 나왔다

 

미니 지말: 왜 인간만 유독 출산이 힘겨울까
미니 앙뚜안: 다리 사이가 비좁잖아
          
애는 머리가 크고
미니 스트라인스: 인류의 머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지
미니 앙뚜안: 그런 걸 진화라고 말하지
미니 스트라인스: 나중에는 머리가 너무 커져서 모든 인류가 엄마 자궁에서 나오지 못할
              
거야, 모두가 엄마 자궁 속에서 살 날이 올 거야
미니 앙뚜안: 그런 걸 진화라고 말하지

 

지말은 그것들을 냉큼 가방에 쑤셔 넣고 더 복잡한 매듭을 지었다
앙뚜안이 지말의 팔뚝에 앉은 모기를 때렸다 순간 모기의 불 꺼진 내장을 본 사람은 없었고
모기는 겸손히 날아 스트라인스의 목덜미에서 숨을 골랐다

 

태어나서 난감함 새끼 거북들이 어디론가 부적부적 기어가고 있었다
이쪽을 깨세요 저쪽을 깨세요
태어나세요!
모두 예술가가 될 수…

 

도망가자!
도망가자!
도망가자!

 

시인 스트라인스, 앙뚜안, 지말은 모기와 함께 강연장을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온 젊은 시인들 뒤로
다림질된 적 없는 구름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따뜻하고 바람 없는 날이었다


공원의 싸움

 

공원이었다
지말과 스트라인스는 쫓아오는 앙뚜안을 따돌리고 모텔로 향한다
스트라인스가 지말을 벗겼는데
텅 빈 새장이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아치형 천장에
칠이 벗겨진 편이 자연스럽고
가만히 있어도 삐걱거리는
스트라인스는 웃을 수 없었다 새장과
자 본 적이 없으므로 더구나
새도 없는…
새장 속 플라스틱 먹이통은 피로한 보라색이다
그냥 해!
지말이 눈을 크게 뜬다 답이 없으므로 시인은
여기까지 쓴다 다만,
답 없는 상황은 다른 답 없는 상황으로 덮이므로 시인은
공원에 남겨진 앙뚜안과 비둘기에게 발걸음을 옮긴다
비둘기는 서 있다
한 발로
사실 비둘기의 다리는 두 개다
다리 하나를 배때기에 숨긴 채
오늘도 다친 척하고 있을 뿐이다 앙뚜안은
비둘기를 향해 돌진해 그것을
자빠뜨린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두 발로 선다 비둘기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발을 접어 배 아래 숨긴다
앙뚜안은 물론 서운하다
왜 나에게는 힘든 척하지 않는 걸까

 

앙뚜안과 비둘기가 싸우는 동안
은 여름이었다
사람들은 대낮에 무능했다 지말은
모텔을 뛰쳐나와 공원의 전도사에게로 향한다

 

오후 2시가 오후 2 1분에 지각하기 위해 몸을 비트는 여름이었고 똥파리는 텅 빈 새장의 주변에도 공원에도 있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쓴웃음을 지으며 날아다녔다

 

벤치 옆에 서 있는 채송화
누구의 외로움은
다른 누구의 외로움으로
보완되어야 하므로
채송화 옆에 다른 채송화가
서 있을 법도 한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물어도
벤치에 앉은 전도사는 말이 없다
함부로 달콤해진 초코바 하나
쥐여 줄 뿐
손이 부족한 천국에서는
천사가 악마도 겸임한다는 사실 같은 게
사람들의 따뜻한 여름날을 망쳐선 안 된다고,


그녀들

 

앙뚜안, 스트라인스, 지말은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었다

 

사람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영혼 그리고 육체

 

그녀들은 생각했다

 

지말이 외친다
사람은 문 열린 새장 그리고 날아가 버린 새로 구성된다

 

스트라인스가 걸음을 멈춘다
사람은 하나의 지팡이와 그 지팡이에 얻어맞는 파리의 총합이다

 

앙뚜안이 손을 든다
사람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지
자신의 손가락과 그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은 모든 것

 

그들은 책을 덮고 집으로 갔다
집은 언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가?

 

여름, 슬픔에 인색한 계절에
그녀들은 그런 물음은 던지지 않는다


우리는 공동창작자로서 시인과 함께 창작하며 시를 읽고, 산책자의 걸음으로 텍스트 이곳저곳을 밟아보며 시선을 부여했고, 때로는 이쪽저쪽 깨부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망가자!’ 외치고 텍스트 밖으로 뛰쳐나온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텍스트는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으로 독자와 함께 머무를 것이다. 이제 시는 본고를 벗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덧없더라도 조금은 재미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쓴다 다만, / 답 없는 상황은 다른 답 없는 상황으로 덮이므로 시인은 / 공원에 남겨진 앙뚜안과 비둘기에게 발걸음을 옮긴다는 시구처럼, 답 없는 이 삶 속에서도 함부로 달콤해진 초코바를 나누는 전도사와 같은 방식이라면 우리의 덧없는 여름도 새로운 의미에서 본전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별 이유 없이 시를 씁니다. 시를 쓰는 순간만 아프지 않고, 시를 쓰지 않는 나머지 시간이 너무 지루합니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습니다하는 시인의 말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손에 잡힐 것만 같다. 그것은 사람의 엉뚱한 부분들을 회집하기,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 문 뒤를 바라보기, ‘영혼 그리고 육체에 국한된 것이 아닌 환원될 수 없는 우리만의 기기묘묘한 특성들을 살피기, ‘슬픔에 인색한 계절에’ ‘집은 언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가?’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과 같다.

 

, 이제 마지막으로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돌아와, 그 구불거리는 선이 무얼 의미하는지 묻던 아마데오에게 두 젊은 시인이 어떤 답변을 했는지 살펴보자.

 

“이 시는 유희예요. 아주 쉽게 알 수 있어요, 아마데오. 보세요. 모든 사각형 위에 돛을 첨가해 보세요. 이렇게요.

이제 뭐가 있나요? 내가 말했다. 배? 그들이 말했다. 바로 그래요, 아마데오, 배예요. 그리고 제목인 <시온(Sión)>은 사실 <항해(navegación)>라는 단어를 은폐하고 있어요. 그게 다예요, 아마데오. 아주 간단해요. 더 이상의 비밀은 없어요. (…) 나는 <아 그렇군>이라고만 말하고 테킬라 병을 찾아 한 잔, 그리고 또 한 잔을 따랐다.”

 

삶은 여름처럼 뜨거운 햇볕을 내리쬐어 답답함을 선사하기도, 우리를 소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소진되었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가 강연장을 뛰쳐나가, 벨라노와 리마가 을 첨가하듯 말이다.
참으로 쓸모 있는 인간의 놀이인 시쓰기에 공동창작의 형태로 참여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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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로베르토 볼라뇨 - 「야만스러운 탐정들」
박솔뫼 - 「그럼 무얼 부르지」, 「고요함 동물」
김유림 - 「갱들의 어머니」
서이제 - 「0%를 향하여」, 「낮은 해상도로부터」
김해솔 - 「반입자」
에세이:
질 들뢰즈 – 「소진된 인간」
김유림 – 「단어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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