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는 The Necks – Hanging Gardens (1999)
광주송정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KTX 열차 안, 터널 안. 터널 밖, 이후 또 터널.
천을 따라 피어있는 벚꽃, 둔덕의 가로막음과 사라짐. 또 터널, 밖, 터널 안. 반복. 풍경은 사라지는 중.
기억. 소멸과 관련된 몇 가지 생각들. 야구로 유명한 광주의 초등학교의 2024년 신입생 수: 7명. 소문으로 들음. 어떤 미래들 소멸. 아니 생성되지 않았기에 단절.
다시 터널. 풍경의 반복, 반복은 반복되어 기억은 단절, 시선은 차단. 기계적 결합의 물리적 단절.
지역과 도시의 소멸. 광주의 영토는 그대로. 인구는 잘 모르겠음. 하지만 미래는 소멸하나? 수도권 지역구 국회의원의 초과. 지역의 넓은 영토, 기억 격차, 소멸. 자연으로 환원.
논이 보이고 산이 보임. 돌로 된 산봉우리가 하늘을 찌르고 듬성듬성 보이는 주택들. 사람은 보이지 않음. 간혹 보이는 움직이는 차. 정읍은 지금 밥 먹을 시간. 골프연습장, 기억나는 파크 골프장 설치 공약.
광주는 소멸의 도시. 아직은 4월이지만 5월이 되면 여실히 드러나겠지. 사라지는 것은 또 무엇. 나주 문평면에는 태양광 패널이 들어섬. 사람은 잘 모르겠음.
터널은 삼킴. 단절시킴. 그리고 기차는 터널과 계략을 생성. 우리를 암흑 속으로. 하지만 기차는 계속 달림. 터널을 벗어나기도 들어서기도. 터널에서 터널로 이어지는, 혹은 터널 밖에서 터널 밖으로 연결되는 시각. 천변을 따라 늘어선 벚꽃이 그것을 증명. 벚꽃이 가장 분홍일 때는 지는 태양 빛을 받을 때. 문득 이미지 기억. 광주천을 따라 늘어선 어설프지 않은 벚꽃나무들. 경사면의 기울기와 아슬아슬하게 각을 맞추어 햇빛을 쬐다.
기억 격차. 광주에 여러 아파트가 순식간에 들어선 느낌. 하지만 건축은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음. 소멸도 마찬가지. 점진적인 것들. 하지만 틀어짐. 나에겐 순식간. 꽃은 피어나기 위해 노력 중. 확산과 생성을 위한 몸부림. 처절함. 그래서 눈에 들어옴. 초록은 너무 흔함. 초록은 초록이 가득 찬 상태일 때에만 기억남. 하지만 초록은 계속 여기, 그리고 거기에 있음.
익산 도착, 익산 시내, 시애틀 모텔, 주차장, 차. 사람 조금. 한 시간 넘게 남은 시간. 30분가량 달림. 기차가 달림. 나는 앉아 있음.
광주에는 매년 옴(감). 창밖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창밖의 기억은 온전히 보존되었는가? 광주천의 벚꽃을 나는 기억하는가. 기억, 작아져 사라짐. 번역: 소멸.
오래된 아파트, 아직 사람이 사는 듯. 그 옆,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 3개 동. 골리앗 크레인이 기세를 올리는 중. 또 벚꽃, 또 공사장. 공원들, 사람이 없는 공원들, 공사는 역시 아파트. 지역의 인구는 소멸. 하지만 아파트는 증설. 땅의 역사는 소멸, 미래는 창설.
어떤 기억은 잔존, 어떤 기억은 파편적으로 흩어짐. 퍼즐 맞추기, 잃어버린 퍼즐은 그림으로 채우기. 할아버지 장지 이전하기 전, 설마다 가던 망월동. 그 옆 국립 5.18 민주묘지. 기념관. 큰아버지와 나, 아빠. 큰아버지의 큐레이션. 걸려있는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 외우기. 되세기기. 기억 격차로부터 맞서 싸우기.
축사와 둔덕. 나무들. 여기도 태양광 패널. 처음 보는 사람은 인삼 키우나 착각할 듯. 끊임없이 세워진 태양광. 사실 끊임은 있음. 확대와 과장. 확대와 과장은 기억 격차를 메우는데 도움이 될까. 창 밖, 엄청나게 귀엽게 생긴 오래된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 안에 사람은 몇 명이 있을지.
소멸되는 것은 지역. 인구 소멸. 미래 단절. 역사 소멸. 태양광 패널은 생성. 전기도 생성. 일석이조. 원자력 발전소는 어디에 생성되는지 모르겠다. 아마 눈 밖이겠지.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 그러므로 만사 오케이. 기억 격차.
터널 지나 소음차단 벽. 소음 차단 벽은 아파트에도 있음. 새로 지은 큰 아파트 단지에. 서울과 수도권에 많음. 소음은 아파트 단지 밖으로 소음을 튕김. 소음은 도로의 몫. 아파트 안. 안전, 쾌적. 차량은 도로를 달림. 아파트 밖의 보행자는 아파트 내부의 경관으로부터 단절. 동시에 소음과 차량의 숲 사이로 내던져 짐. 도로의 차량과 보행자와 소음과 혼란은 아파트의 내부로부터 소멸.
시골은 소멸 중. 인구는 감소 중. 도시는 확장 중. 하지만 두 곳 다 아파트는 신설 중. 그리고 터널. 소음차단벽, 터널. 가리기. 보이지 않게 하기.
광주가 소멸하기 전 광주천을 내 주머니에 넣겠다는 다짐. 흘러가는 물에게 다짐을 전함. 물은 흐름. 어디인지 모를 어떤 곳으로 떠남. 시야에서 사라짐. 그러므로 소멸.
어느새 해가 짐. 밖이 잘 보이지 않음. 밤은 터널과 같음. 벚꽃의 분홍을 빼앗음. 한국에는 천과 강이 많음. 비가 오면 나무가 머금고 있던 물들이 흘러내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 웅덩이를, 계곡을 생성. 하지만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면 소멸.
제주, 4월의 기억. 아니, 한동안의 기억. 한강, 기억 격차와 겨루다. 작별하지 않고자 함. 소멸에 대한 경멸. 미 군정, 제주도민들의 군부대 설치 반대, 떠오름. 건국전쟁, 이승만의 이야기. 이승만에 대한 기억 격차. 제주와 이승만의 추종자들, 기억 격차. 또 다른 차원의 기억 격차. 조금 더 복잡한 기억 격차. 다른 기억을 회집하기. 다른 기억 모으기. 기억하기의 격차.
오송역 도착. 차이. 익산과는 다른 분위기. 오른쪽 창문 밖, 여학생 손 흔듦. 대상은 내 왼쪽에 자리한 남학생. 나는 이것을 기록. 그들은 시간을 추억. 비슷한 관찰, 다른 기억. 다른 기억하기, 기억하기의 기억격차.
기차는 이동, 기차의 이동 때문에 생기는 경험. 의자와 테이블의 합동. 노트북의 결합. 따라서 기록. 벚꽃의 생성과 결합, 빛의 굴절과 반사, 그리고 눈. 어떤 눈과 빛이 만나 기억 생성.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선 차단.
The Necks의 앨범이 끝남. 노래가 기가 막히다는 영미권 감상자들의 댓글. 공감. 다음 노래. 고민 중. 기차는 출발.
오송, 아파트에는 불이 들어옴. 사람의 증거. 전기의 소비. 창문, 풍경보다는 앉아있는 내 모습이 더 잘 보임. 내부가 외부보다 밝으면 이런 일이 발생. 또다른 단절. 역시 밤은 단절. 터널과 비슷한 종류의 단절. 더 이상 밖과 터널 안 구분 불가. 외부와 단절.
기차 안. 50분 정도 남은 여정.
창밖과의 단절로 인한 좌절. 관찰의 실패. 음악 선정도 실패. 컴퓨터를 끄고 그냥 책이나 읽기로 결정.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과 단절하겠다는 결정. 사실 그건 대담한 결정.
그건 그저 단상.
기억 격차는 김유림 시인/소설가와 임효진 사진가의 작업물에서 가져온 이론/아이디어
https://www.sfac.or.kr/literature/epi/D0000/epiView.do?epiSeq=1094
기억 격차 - 김유림, 임효진 | 웹진 《비유》
www.s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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