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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들 정리

논문: Fuck Nuance - Kieran Healy

키에란 힐리가 2017년에 발표한 논문이다. 논문 답지 않게 유쾌한 분노가 서려 있기에 기분이 적적한데 논문이 읽고 싶다면 이 논문을 들춰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분이 나쁜데 논문을 읽고 싶은 이상한 사람이 있다면.)

 

사회학의 장에서 점점 늘어나는 요청이 있다. 이론이 보다 더 미묘한 차이를 잘 보여주기를 요청하는 것, request for a more nuanced theory가 바로 그것이다. 힐리는 사회학에서 요청되는 뉘앙스를 세 가지로 구분하고 세가지 방면에서 검토한다. (뉘앙스가 정말로 더 좋은 이론을 만드는가? 뉘앙스가 이론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가? 뉘앙스를 통해 더 영향력 있는 이론을 생산하는가?)

 

세 가지 뉘앙스
1.
세밀함을 위한 뉘앙스 (nuance of the fine-grain) - 더 구체적인 경험증거 기술을 위한 요청, 더 높은 정확도를 위한 요청
2.
연구의 개념적 모형을 위한 뉘앙스 (nuance of the conceptual framework)
이론에 보다 많은 살을 붙여, 어떤 반박도 불가한 이론을 구축할 것에 대한 요청. (탈콧 파슨스의 경우가 대표적이며, 힐리는 파슨스의 작업은 이런 질문에 댑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반적인 전제조건으로는 무엇이 있지?라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형식을 취한다고 본다. 힐리는 1번과 3번에 대한 요청이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진단하며, 이 두 가지 형식의 뉘앙스에 대한 고찰이 논문의 중심을 이룬다.)
3.
감정사의 뉘앙스 (nuance of the connoisseur)
뉘앙스에 대한 민감성이 사회적 현실에 대한 풍부하고 짙은 흐름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의 발현일 것이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요청

 

On principled grounds.
힐리는 이론이 추상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근거로, 당연하게도 모든 경험증거가 이론에 부합할 수는 없음을 이야기한다. 뉘앙스에 대한 요청들은 결국 명확하지 못하고 모호한 이론을 낳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세밀함을 위한 뉘앙스에 대한 요청은 생산적이지 못하고, 결코 더 좋은 이론을 낳는다고 볼 수 없다.
On aesthetic grounds
힐리는 감정 평가사가 요청하는 뉘앙스, 즉 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하며 미묘한 변화와 차이를 이론이 잘 포착해야 한다는 이런 감정평가사의 요청이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론이 흥미를 유발하느냐 하는 것이다. 힐리에 의하면 이 흥미는 학자가 가진 스타일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자신의 청중들을 지적으로 정복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그들과 실질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On strategic grounds
힐리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게리 베커의 행동경제학 이론에서는 뉘앙스를 찾아볼 수 없으며, 그렇기에 강력하고 흥미로운 이론으로 남아 지속적으로 회자된다고 이야기한다. 사회학에서 오랜 세월 영향력을 발휘해온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의 이론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의 이론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것의 뉘앙스 때문이 아닌 강력한 설명과 예측능력 때문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베버가 회자되는 이유는 베버가 제안한 여러가지 유형학
권위의 3가지 분류, 합리성의 두 종류, 그리고 관료제의 기본적 특성 등 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있다.

 

이론의 발전이 사람들의 주목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뉘앙스를 최우선으로 두게 되면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방황할 뿐이라고 힐리는 지적한다. 힐리에 의하면 뉘앙스에 대한 추구는 더 좋은 이론을 생산하지도, 더 흥미로운 이론을 만들지도, 더 영향력 있는 이론을 만들지도 않는다. 뉘앙스는 폐기의 대상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마지막 두 문장은 다음과 같다. We are glutted with nuance. I say, fuck it.